성 프란시스 수도회

소명을 따르는 길

 

 

 

 

소명을 따르는 길

 

 

 

 

수도 생활의 뿌리는 멀리 그리스도교의 시작 때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수도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 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 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사도 2:44-47). 여기에는 수도 생활의 주요 주제들이 담겨 있습니다. 즉 공동생활, 나눔, 예배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하느님을 향한 무구한 열망이 있습니다.

 

3세기에 즈음해서는 북 에집트 지역 대도시들의 타락을 떠나 사막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예수처럼 악마와 대결하고, 그들을 에워싼 악을 만나 악의 뿌리를 자르고자 했습니다. 성 안토니(St. Anthony, 251?-356), 성 대 바실(St. Basil the Great, 약330-379), 그리고 성 베네딕트(St. Benedict, 약480-550)와 같은 분들은 많은 사람들을 자신들의 무구하고(simple) 고독한 길로 이끌어 냈습니다. 

 

많은 수도자들은 고독을 유지하면서도 점차로 이러한 사막 교부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Abba = 아버지, Monos = 고독, 여기서 'abbot[원장]와 Monk[수도자]'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러한 공동체들은 수가 불어나서 유럽 도처에 퍼져나갔습니다. 특히 6세기에서 9세기에 이르는 동안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대영제도(the British Isles)에서는 수도회 본부가 아일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노섬버랜드에 있었습니다. 성 패트릭(St. Patrick, 약 355-461), 성 데이빗(St. David), 성 애단(St. Aidan), 그리고 성 쿠스버트(St. Cuthbert)는 위대한 성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켈틱 교회와 사회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 영향은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켈틱 교회가 서구의 전체 교회의 한 일원임을 천명하자, 켈틱교회의 수도회는 그 특징을 접어두고 성 베테딕트 수도회 규칙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까지 천여년 동안 서구 교회에서는 베네딕트 수도회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베네딕트 수도회는 엄격한 규칙, 공동체와 수도원장에 대한 복종을 대단히 강조했습니다.

 

성 프란시스 수도회와 성 도미니크 수도회는 중세기 동안 좀더 유연한 규칙을 가지고 발전하여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프란시스회가 영국에 처음 들어간 것은 1224년의 일이었습니다. 그후로 16세기에 이르러 오래된 갈멜 수도회(Carmelite Order)는 두 분의 스페인 사람, 즉 아빌라의 성 테레사(St. Teresa of Avila)와 십자가의 성 요한(St. John of the Cross)의 영성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실제적이고 깊은 영성을 갖춘 더욱 철저한 단순 생활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서구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새로운 상황에 대처해 나가기 위한 새로운 수도회가 등장했습니다. 예수회는 1594년 로욜라의 성 이그나티우스(St. Ignatius of Loyola)가 설립한 수도회로, 특히 극동을 대상으로 한 선교 사업에 신속하게 대응했습니다. 성 이그나티우스는 피정 훈련과 새로운 형태의 명상을 발전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성공회와 천주교가 오늘날 재발견하고 있는 가치들을 담고 있습니다. 성 빈센트 드 폴 (St. Vincent de Paul)은 1633년 자애 수녀회(the Sisters of Charity)를 설립했습니다. 이 수도회는 여자 수도회로서는 첫 개방 수녀회로, 병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데 전적으로 투신했습니다.

 

성공회에서는 19세기에 이르러, 종교개혁 이후로는 처음으로 수도 공동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이러한 공동체들이 등장한 것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나 이들에 대한 보살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수도자들이 병자를 간호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크림 전쟁 기간 동안 성공회 수녀들의 도움을 받아 간호 사업을 펼쳤습니다. 남자 수도회는 수도회적 전통에 근거해서 출발했으며, 이후에는 절박한 상황에 있는 사목자들을 돕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는 2,3천명의 성공회 수도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사목활동은 다양합니다. 어떤 분들은 교구 교회나 교회의 기타 활동에 주로 관심을 갖는 반면,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이며, 기도 생활에 힘쏟는 분들도 있고, 이웃들과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수도회이건 그 근간에는 두가지 기본적인 열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을 찾고 이웃을 섬기는 일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헌신의 삶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힘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랑이 수도자들의 마음을 더욱 넓게 열어주어 절박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도록 합니다. 모든 수도 생활의 중심인 기도는 하느님과 세계에 대한 개방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기쁨과 슬픔, 놀라움과 고독, 사랑과 고통에 물든 세상에 개방토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한, 수도 생활의 소명은 세상 속에서 열매를 키워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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