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시스 수도회

4: 기도

 

 

 

성 프란시스

 

4. 기도

 

 

들어가며

 

프란시스는 기도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지만, 기도에 관한 책을 저술하거나 체계적인 영성신학을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그가 행한 것은 기도하는 것과 기도하도록 다른 이들을 고취시키는 것이었다. 그에게 기도는 “말로 하는 기도”가 아니다. 첼라노의 토마스는 이것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기도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스스로가 곧 기도였던 그가 주님께 빌어 얻고자 했던 그 하나를 향하여 그는 그의 전 존재를 바쳐 자신의 모든 집중과 열정을 이끌어갔다.” (2첼라노95)

 

프란시스와 예전적 기도

 

중세시대에 교회생활은 모든 면에서 사람들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예전적인 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수도자들과 성직자들은 성무일도에서 노래와 공동체 행위인 성찬식을 거행하였는데, 이 노래와 성찬식은 당시 교육받은 자들과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쓰는 언어인 라틴어로 하였다. 아마 주일 성찬식이나 매일하는 성무일도를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다른 순례자를 만나거나 혼자 살면서 매일 혼자 기도하는 은수자들도 있었다. 당시 교회에서 전례 생활이란 대부분 보통 사람들에게는 순례와 같은 대중적 신앙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그들은 미사에 출석했지만 영성체를 자주 하지는 못했다.

 

프란시스가 그의 형제들을 위하여 썼던 규칙들을 보면, 프란시스가 성무일도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서 높은 가치를 보여준다. 그것들 모두는 성무일도의 어떤 형식을 말하고 있다. 성직자들은 교회의 공식적 형식에 따라 집전하였으며, 그 예식을 행하는데 필요한 책을 갖도록 허가 받았다. 성직자가 아니었던 이들(그리고 글을 읽을 줄 모르던 형제들)은 자신들의 성무일도를 행할 때에 일정한 횟수의 주의 기도로 받쳤다.

 

첼라노의 토마스는 다음과 썼다:

 

프란시스는 성무일도를 경건하고도 열심히 바쳤다. 비록 그가 눈병을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나 배앓이나 비장, 간장에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에도 벽이나 담에 몸을 기대지 않고 시편을 받쳤고, 늘 모자를 벗고 눈길을 다른 데에 주지 않고 분심잡념없이 바쳤다. 그는 걸어서 세상을 다닐 때에도 성무일도를 바치기 위하여 언제나 발길을 멈추었다. 말을 타고 있을 대에도 말에서 내렸다. 그가 어느 날 로마에서 돌아올 적에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그는 성무일도를 바치기 위해서 말에서 내렸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는 통에 그는 비로 흠뻑 젖어 버렸다. 그가 언젠가 이야기하였다 : “장래에 벌레의 먹이가 되어 버릴 육신도 조용하게 그 음식을 취합니다. 하물며 영혼이야 실로 평온하고 고요한 가운데 그 음식인 하느님을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첼라노96).

 

프란시스는 예전적 사용을 위해 기도문을 만들었다. 이들 가운데 주의 수난 성무일도; 성무일도 전에 바치는 찬미경;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는 인사와 덕행들에게 바치는 인사가 있다. 이들 대부분은 성서 구절에 대한 프란시스의 발췌로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주의 수난 성무일도는 대부분을 시편에서 발췌하였다. 이 자료들의 배열은 성서에 대한 프란시스의 올바르고 해박한 지식과 신약성서 구절과 관련된 구약성서 구절의 가필을 포함하여 다른 책들로부터 자료들을 취합하는 그의 능력을 볼 수 있다. 프란시스에게 성서의 지식은 말씀에 관한 끊임없는 묵상, 다른 말로 하면 그것들이 친숙해지고 점차적으로 자신에게 의미를 나타내 보이도록 성경 말씀에 대한 믿음이 깊은 경청과 상기와 암송의 결과였다.

 

프란시스에 의해 쓰여진 다른 기도는 유언에서 발견된다:

 

주님이 성당에 대한 크나큰 신앙심을 주셨기에, 다음과 같은 말로 단순하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로써 세상을 구속하였사오니, 우리는 여기와 전 세계에 있는 당신의 모든 성당에서 주님을 흠숭하며 찬양하나이다.” (유언4-5)

 

성무일도의 바침에 관하여 프란시스는 형제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썼다.

 

성직자들은 목소리의 음률보다는 마음의 일치에 관심을 두어, 하느님 앞에서 열심히 성무일도를 바치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여 목소리를 곱게 내어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기보다는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도록 하십시오.” (형제회에 보내는 편지 41-12)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진실한 헌신이 있는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이다. 성무일도는 하느님을 향한 찬미의 봉헌이다. 그들은 이것에 지장을 주는 그들 노래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관심을 갖게 하지 않았다.

 

토론과 질문

 

  • 당신은 어떤 형식의 성무일도를 바치는가? 이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만약 당신이 성무일도를 바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는데 당신에게 어려움을 주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 당신은 더욱 친밀해지고 점차적으로 그들의 의미를 드러내게 되는 어떤 방식으로 성경의 말씀들에 관하여 묵상하는가?

 

프란시스와 관상

 

관상”이란 말은 원래 그리스도교가 있기 전에 로마에서 유래했다. 이 당시에 날아다니는 새나 반짝이는 번갯불의 번쩍임과 같은 징조들의 의미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하늘의 분명한 관찰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이 쉽게 이 징조들을 관찰할 수 있는 장소를 별도로 남겨 놓았다. 이 공간을 별도로 남겨 놓는 행동 -그리고 관찰 그 자체의 행동- 은 영어로 “관상(contemplation)"이라는 말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의 본래 의미는 주의 깊고 성실한 관찰의 행동과 연결되어있다.

 

관상은 참된 본성을 깨닫기 위하여 어떤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행동으로 정의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자연세계의 어떤 부분을 깊이 있게 묵상하면 우리는 나무와 물과 공기와 우리 주위에 있는 어떤 것의 참된 본성을 깨닫게 된다. 피조물에 관한 그러한 관상에서 우리는 그것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깨닫게될 것이다. 프란시스는 틀림없이 그러한 관상가였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프란시스와 피조물의 관계를 살펴보았을 때에 우리는 프란시스에게 온 세계는 하느님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는 선함의 거울임을 보았다. 그가 크나큰 애정을 갖고 대했던 모든 것은 그에게 세상 속의 하느님이 현존하고 있음의 표지들이었기 때문이다.

 

관상은 자연세계를 넘어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포함하는데 까지 확장된다.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프란시스는 또한 지배하기보다는 유일하고 소중하며 섬김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그들을 생각했음을 본다. 그의 후기 훈계에서 프란시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종이기에 모든 사람들을 섬겨야 하며 내 주님의 향기로운 말씀들을 전해야 합니다” (2LtF 2). 그와 형제들은 “작은 형제들” 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나환자와 가난한 자와 버림받은 자를 찾았으며 권력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기를 좋아했다.

 

프란시스는 모든 것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볼 수 있도록 자신을 이끈 관상을 통하여 이 깨달음에 도달했다.

 

물론 관상은 우리 인간세계를 넘어 신성함에 대한 직접적인 관상을 포함하는데 까지 연장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프란시스는 참된 관상가이다. 프란시스는 오상을 받은 이후에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를 썼다. 그 안에서 그는 하느님이 행하셨던 것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를 들어보자:

 

주님, 당신은 홀로 거룩하시오며,
기적을 하시는 주 하느님이시나이다.

 

당신은 힘세시고 위대한 분이시나이다.
당신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며 전능한 왕이시나이다.
당신은 거룩한 아버지시며 하늘과 땅의 왕이시나이다.

 

당신은 삼위이시고 일체이시오며 신들의 주 하느님이시나이다.
당신은 선 자체이시며 모든 선이시며 지상 선이시나이다.
당신은 살아계신 주님이시오며 참 하느님이시나이다.

 

당신은 사랑이시오며 자비이시나이다.
당신은 지혜이시오며 겸손이시나이다.
당신은 인내이시오며 아름다움이시나이다.
당신은 온화이시며 안식처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평화이시오며 기쁨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희망이시오며 즐거움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를 흡족하게 하는 온갖 보화시나이다.

 

당신은 아름다움이시오며 온화이시나이다.
당신은 피난처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보호자이시오며 방어자이시나이다.
당신은 힘이시오며 휴식처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희망이시오며 우리의 믿음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사랑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온전한 감미로움이시오며,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시나이다:
위대하시고 감탄하올 주님,
전능하신 하느님, 자비로운 구세주이시여!

 

이 말들이 주는 느낌은 온전히 하느님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많은 이름들 속에서 기뻐하는 어떤 사람, 하느님이 계신 모든 것을 깊게 깨달은 어떤 사람에 대한 것이다. 그는 이 말씀을 크나큰 육체적 고통을 겪을 때에 썼다. 그렇지만 이 찬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있다. 그것들은 고통과 괴로움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비교하여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한 사람의 기도이다.

 

토론과 질문

 

  • 관상”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당신은 앉아서 주의 깊게 어떤 것을 관상적인 방식으로 관찰한 적이 있는가?
  • 위에 인용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를 다시 한번 읽어라. 프란시스가 하느님을 묘사하는데 선택했던 말들을 보라. 당신에게 하느님을 묘사하는 것은 어떤 말들인가?

 

모든 시간에 기도

 

성서는 “쉬지 않는 기도”를 우리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는 모든 시간에 기도를 바칠 수 있는가? 프란시스는 기도를 행위라기보다는 몸과 마음의 태도임을 보여준다. 첼라노의 토마스가 프란시스는 “기도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스스로가 곧 기도였던 그가 주님께 빌어 얻고자 했던 그 하나를 향하여 그는 그의 전 존재를 바쳐 자신의 모든 집중과 열정을 이끌어갔다.” (2첼라노95)라고 썼을 때 그는 이것을 잘 묘사했다. 우리는 기도를 바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해나갈 때에 우리는 우리와 함께 주위에 전달할 수 있는 찬양과 기도의 분위기로 충만해지도록 우리를 이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기도가 되는 것”이다.

 

프란시스가 형제들을 위해 썼던 제2회칙은 이것을 잘 표현한다.

 

주님으로부터 일하는 은총을 받은 형제들은 충실하게 또 헌신적으로 일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혼의 원수인 한가함을 피하는 동시에 거룩한 기도와 신심의 정신을 끄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제2회칙 5장 1-2)

 

프란시스는 파도바의 안또니오 형제에게 비숫한 것을 말한다.

 

나의 주교 안또니오 형제에게 프란시스 형제가 인사합니다. 신학연구로 인해서 회칙에 담겨있는 대로 기도와 신심의 정신을 끄지 않는 한, 그대가 형제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일은 나의 마음에 듭니다. (안또니오 성인에게 보내신 편지)

 

노동과 공부는 기도의 부분을 차지하며 기도하는 듯한 회상의 상태에서 행한다. 그것들은 기도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노동에서 기도로 바꾸거나 기도로부터 다시 노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노동과 공부를 우리들의 기도까지 확장한다. 그때에 우리들의 매일은 우리들의 기도의 출발점이 되는 것을 관심 갖는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가 함께 하는 기도와 회상의 정신을 우리들의 노동과 공부에까지 확장한다. 활동과 기도의 양극 사이에 서로를 떠받치고 도와주는 한 운동이 있다. 이것은 “중단 없는 기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보나벤투라는 자신의 대전기에서 프란시스의 기도에 대한 열정을 묘사했다:

 

성 프란시스는 육체 머물러있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로 하여금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욕망도 느끼지 않도록 했다. 그리하여 그는 사랑하는 분으로부터 오시는 위안을 놓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그분에게 기도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이 하느님의 면전에 항상 있도록 노력하였다. 기도는 명상하는 생활 가운데 그의 주요한 위로였다. 명상하는 생활 안에서 그는 육체적으로만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분을 찾고자 하는 열망 가운데서 하늘 나라에 이미 들어간 것처럼 천사들과 동료가 된 것 같았다. 그는 결코 자기자신만의 노력에 의존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스런 섭리에 신뢰를 두었으며 자신의 근심의 짐을 끊임없는 기도 안에서 그분께 맡겼다. 그는 기도의 은총이야말로 수도자가 다른 무엇보다도 추구해야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어떠한 사람도 기도없이는 하느님께 봉사하는데 있어서 진보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또한 그는 수사들을 기도에 전심시키고자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다. 걷고 있든 앉아 있든, 고국에 있는 외국에 있는, 일하고 있든 쉬고있든간에 그는 너무도 열심히 기도에 전력하였기에 자신의 마음과 영혼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수고와 모든 시간까지 기도에 바친 것처럼 보였다. (대전기 10장 1)

 

첼라노의 토마스는 프란시스가 기도하기 위해 조금은 개인적이고 조용한 장소를 어떻게 찾아냈는지 이야기한다. 만약 그가 그와 같은 것을 찾지 못했다면 자신이 눈에 뜨지 않도록 자기 망토로 작은 독방을 만들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언제나 기도하기 위하여 외딴 곳으로 갔다:

 

그가 집에 있을 때에 그랬고, 숲이나 외딴 곳에서 기도할 때에는 숲을 한숨으로 채웠고 땅에는 눈물이 흘러가게 하였으며 손으로 가슴을 쳤다. 그런 곳이 마치 무슨 비밀 장소나 되는 듯이 그때마다 주님과 말로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그는 심판관에게 응답을 하곤 하였고, 아버지에게 탄원을 드렸으며 자기 친구와 말하는 투로 신랑과 즐거움을 나누곤 하였다. (2첼라노 95)

 

마지막으로 제1회칙 23장 8-11절에서 프란시스 자신의 말들을 들어보자: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에게 몸과 마음과 생명을 모두 다 주셨고 지금도 주고 계시는 주 하느님을,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속량하셨고 온전히 당신 자비로써 구원하실 주 하느님을, 불쌍하고 비참하며 부패되고 추악하며 배은망덕하고 악한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들을 주셨고 또한 주고 계시는 주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능력을 다하고 정력을 다하고 노력을 다하고 정을 다하고 애를 다하고 소망과 뜻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합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충만한 선, 모든 선, 완전한 선, 참되시고 최고선이신 우리 창조주와 구세주이시고 유일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양순하시고 감미로우시며 달고달콤하신 하느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홀로 거룩하시고 정의로우시고 진실하시고 거룩하시고 무죄하시고 순수하신 하느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통하여 그분 안에 회개한 모든 이들과 의로운 모든 이들과 하늘에서 함께 기뻐하는 모든 성도들의 모든 용서와 모든 은총과 모든 영광의 샘이신 하느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우리는 원하지도 바라지도 말며 다른 아무것도 마음에 들어하지도 만족하지도 맙시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하기를! 아무것도 우리를 떼어놓지를 못하기를! 아무것도 그분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지 못하기를!

 

우리 모두는 어디에서든지, 모든 곳에서, 모든 시간과 때에, 매일 그리고 계속해서, 지극히 높으시고 지존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을, 삼위이시고 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을, 시작도 마침도 없이 변할 수도 볼 수도 없는 분이시고 표현할 수도 이루 다 말할 수도 분이시며 이해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분이신 하느님을, 찬미와 영광과 영예와 찬양을 받으실 분, 지존하신 분, 높으신 분, 감미로우신 분, 사랑하옵실 분, 좋아할 만한 분, 무엇보다도 온전히 세계 영원히 바랄 만한 분을, 진실하고 겸손되이 믿어 마음 속 깊이 모시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흠숭하고 섬기고 찬미하고 찬양하며 영광과 영예를 드리고 찬송하고 감사드립시다. 아멘. (제1회칙 23장 8-11절

 

토론과 기도

 

  • 프란시스는 “기도와 헌신의 영” 은 노동이나 공부를 통해 꺼지지 않았음을 보는데 신중했다. 당신의 노동이나 공부가 당신의 기도와 헌신의 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노동과 공부와 기도 사이에 어떤 유용한 관련을 만들 수 있는가?
  • 위에서 인용된 2첼라노(95) 구절에서 프란시스는 자신의 주님을 “주님 ... 아버지 ... 친구 ... 신부” 로 이야기한다. 이 말들은 하느님/예수와 당신의 관계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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